아침 일찍 뉴욕을 떠나 4시간 운전 끝에 다시 찾은 월든호수는 가뭄의 흔적이 완연했다. 5년 전 처음 왔을 때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 있던 물은 호수 바닥이 안쪽으로 10여m 이상 드러날 정도였다. 그러나 넉넉하게 바닥을 드러낸 호수는 피서를 즐기려는 주민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공간이 되고 있었다. 바다보다는 내륙의 물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길은 이미 만원이다. 미국의 유원지나 향락지는 입장하는 사람 숫자에 따라 요금을 징수하지 않고 주차비만 받을 뿐이다. 말하자면 주차비가 입장료인 셈이다. 주차장이 가득 차게 되면 자동으로 출입금지다
최근 테슬라의 CEO 엘론 머스크의 시속 200㎞ 터널 구상이 화제였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이미 어느 정도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하늘과 땅속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물론 지상의 도로가 더 이상 도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며, 교통지옥에 시달리는 세계의 모든 대도시들이 지하철 건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것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지하철은 1974년 1호선 개통 이후 지속적인 건설과 시설 개선을 통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지하철이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뉴욕 맨해튼에는 정식 행정구역은 아니지만 그 지역의 특성에 맞게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다. 첼시, 소호,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그리니치빌리지 등이다. 그중 하나가 가먼트 디스트릭트(Garment District)이다. 동서로는 맨해튼의 6가부터 9가 사이, 남북으로는 34가로부터 42가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여기가 세계 패션의 4대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패션 센터이다.가먼트 디스트릭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7가와 39가가 만나는 광장에는 이곳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주는 동상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단추에 실을 꿰는 듯한
새벽 4시, 둘째 아이 방에서 알람이 울린다. 나는 이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뉴스를 보고 있는 중이다. 10여분 후 2층이 소란해진다. 이제 첫째와 셋째도 잠을 깬 모양이다. 순식간에 집안이 부산스러워진다. 우리집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대단한 하루를 위해 우리는 나름의 풍성한 추수감사절 만찬을 전날 이른 시간에 마쳤고 모두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전 세계인들의 쇼핑데이로 알려져 있는 블랙프라이데이가 미국 최고의 쇼핑데이로 등극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물건을 서로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주말, 이례적으로 선거 결과에 불만을 품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길거리에 나와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Trump is not my president)’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트럼프타워가 있는 뉴욕 맨해튼 5번가도 이 시위대들로 인해 주말 내내 몸살을 앓아야 했다.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의 전언에 의하면 캠퍼스는 암흑적 분위기 그 자체라고 한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던 미국의 가치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에 대한 지성인들의 반응이라 할 수 있다.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선거
맨해튼의 미드타운은 다양한 분야의 세계 최고급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호텔도 하룻밤에 1000달러가 넘어가는 곳이 수두룩하고, 한 끼 식사가 300달러 넘는 식당도 부지기수다.포시즌호텔은 맨해튼 미드타운의 이런 명소 중 한 곳이다. 호텔 1층에는 식당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풀룸(The Pool Room)이라 불렸고, 다른 하나는 그릴룸(The Grill Room)이라 불렸다. 풀룸이 더 넓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라면 그릴룸은 약간 규모가 작으면서 조금 더 대중적인 곳이다.풀룸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근
시무룩한 표정의 두 아이가 스테이플스(미국 최대의 문구 및 사무용품 수퍼스토어) 매장 가운데서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그 사이로 아이들의 아빠가 쇼핑카트에 가득히 문구류를 싣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른다. 앤디 윌리엄스의 유명한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시간(It’s most wonderful time of the year)’과 함께.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는 노래가 아니다. 방학이 끝났고 이제 다시 학용품을 준비해야 하는 ‘백 투 스쿨(Back to School)’ 시즌임을 알리는 스테이플스의
여름의 뉴욕, 그것도 월요일이라면 마땅히 브라이언트파크로 가야 한다. 그것이 당신을 뉴요커로 만드는 길이다. 뉴요커는 무엇보다 걸음이 빠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는다. 그렇게 바쁜 뉴요커들을 조금은 느리게 만드는 곳이 브라이언트파크이다. 콘크리트 정글의 뉴요커들에게 해와 나무와 잔디와 흙냄새를 맡게 해주는 곳, 굳이 특별한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이미 특별하지만, 여름의 월요일 밤은 잔디밭에 담요을 깔고 맥주를 마시며 공짜 영화를 구경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HBO 브라이언트파크 필름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
2010년 3월 25일 캘리포니아주 포트와이너미(Port Hueneme)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빈스 디영 선생님은 영어 수업시간에 수업용 영화를 보는 도중 웃고 떠드는 학생들을 붙잡고 “입 닥쳐 멍청이야(Shut up stupid!)”라고 소리를 지르며, 몇몇 학생들에게 연필을 집어던졌다. 또 다른 3명의 학생은 작대기로 머리를 얻어맞기도 했다. 빈스는 정년이 보장된 그 지역에서 나름대로 존경받던 선생님이었다. 학교의 조사가 시작되자 그는 ‘멍청이’라고 한 것은 인정했지만 작대기로 학생을 때린 것은 부인하였다. 교육위원회의 거
브로드웨이, 뉴욕을 뉴욕답게 하는 이름! 뉴욕이 만인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이유는 뉴욕이 품고 있는 수많은 보석 때문이리라. 그 보석에는 타임스스퀘어도 있고, 센트럴파크도 있고, 월스트리트도 있다. 모두 저마다의 가치로 빛을 내지만 우리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눈과 귀를 즐겁게 하며, 살아 있음을 가장 뜨겁게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브로드웨이만 한 게 있을까. 그런 면에서 대륙 맞은편의 할리우드와 같은 듯하면서 다른, 다른 듯하면서 같은 곳이 브로드웨이다.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을 대각선으로 남과 북을 잇는 긴 길 이름이지만 우리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전환한 사람은 어떤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별로 관심도 없을 법한 이 문제로 지금 미국이 시끄럽다. 최후의 사회적 소수 혹은 사회적 약자로 남아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문제가 핵심 이슈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제정한 화장실법(Bathroom Bill)은 바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이 법의 취지는 공공 화장실이나 샤워장을 이용할 경우 태어날 때 주어진 성에 맞는 장소만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른바 화장실법(Bathroom Bill). 얼핏 들으면 당연한 얘기지만 상
미국 화폐 유통에서 약 11%를 차지하고 있는 게 20달러 지폐다. 이 지폐는 1928년 전면에 앤드루 잭슨 7대 대통령, 후면에 백악관이라는 도안으로 결정된 이래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다. 약간의 변화는 백악관 주변의 나무가 성장한 것을 반영하는 정도에 그쳤다. 가장 최근의 업데이트는 2003년에 이뤄졌다. 바로 이 20달러 지폐에 잭슨 대통령을 밀어내고 등장할 인물이 여성, 그것도 흑인 여성이다. 2020년 이후, 우리는 해리엇 터브먼이라는 흑인 여성 민권 운동가의 초상이 새겨진 20달러 지폐를 보게 될 것이다. 잭
맨해튼은 만인의 연인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수천만 명이 피땀 흘려 모은 돈을 기꺼이 쓰고 가는 도시. 그러나 맨해튼은 상상하는 만큼 화려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신사적이지도 않다. 그러니 혹여 맨해튼이 나를 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상처받지 말라. 앤디 워홀, 빌리 조엘, 아서 밀러와 함께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흥분되지 않는가. 뉴요커의 걸음걸이는 비바체다. 바쁨의 도시 뉴욕은 그래서 24시간도 짧다. 그중 가장 바쁜 곳이 맨해튼과 다른 지역을 이어주는 터미널. 매일 수십만 명의 인파가 이곳을 통해 출퇴근한다.맨해튼에는 1개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의 눈으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9개월.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끝난 지금, 미국인들의 버니 샌더스에 대한 관심은 거의 폭발 직전이다. 9개월 전, 그가 대통령 후보 경선전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그를 알고 있는 미국인은 1%도 되지 않았다. 막강 힐러리가 후보전에 뛰어들자 민주당 주자들은 지레 겁을 먹고 선거전에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자칭 사회민주주의자인 버니 샌더스가 35년 무당파 이력을 집어던지고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힐러리에게 도전을 선언하자 어이없다는 반응이 지배적